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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도산서원에서 만난 300살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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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전경 (미니어쳐)


여름이 막바지 더위를 자랑하는 말복에 도산서원을 방문했다. 이번이 안동은 세번째 방문이다. 10여년전 대학생 새내기일 때와 몇년전 휴일에 시간을 내 아내와 방문했던 하회마을이 내가 본  안동의 전부였다. 문득 같이 여행했던 옛 대학동기들과의 추억이 새록 그리워진다. 그당시에는 블로그도 없었다. 다만 여행 일기장을 만들어 여행가는 길에 조금씩 감상을 메모하고 엽서를 사서 친구에게 보내던 정겨움이 있었다.

도산서원은 지금으로 치면 지방 명문사립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산서당을 시작으로 해서 이황 선생의 사후에 서원으로 변모하였다. 도산서원은 계단식으로 층층이 건물이 있는 형태를 갖췄다. 생각보다 공간이나 건물의 규모가 아담한 것이 아기자기하면서도 멋을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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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편액


도산서원은 말그대로 도산이란 곳에 있는 '책'이 있는 학원(학교)이다.  학원의 간판격인 도산서원의 편액은 글잘쓰기로 유명한 한석봉이 썼다고 한다.

책이 없이 학문이 있을 수 없고, 학교가 있을 수 없다. 책과 관련이 있는 건물이 도산서원에 3개가 있으니 하나는 책을 찍어내는 목판본을 보관하는 장판각이고, 나머지는 책들을 보관하는 도서관 역할을 한 광명실이다. 광명실은 좌우에 하나씩 위치하고 있으며 습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2층의 누각 형태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책을 아끼는 선조의 지혜인가. 책을 통해서 광명을 얻으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을 갖고 있는 광명실의 편액은 퇴계 이황 선생님이 손수 쓰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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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판각(내안에 목판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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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실 (내 안에 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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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겨진 서고 안의 책들. 진본들은 다른 곳에 옮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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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와 광명실


이 광명실을 300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황장군처럼 지킨 사서가 있으니 그 분의 이름은 회화나무다. 나무는 기둥으로 집이 되어 주고, 종이로 책이 되어 주고, 잎과 꽃을 피워 계절을 알려준다. 그리고, 정승처럼 세월을 버티고 서서 불멸의 사서로 서고를 지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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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광명실 앞에 서있는 회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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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지켜내는 300 전사



1박2일 코스로 떠난 안동여행. 안동은 전통이라는 과거를 파는 고장이 되어 있었다. 조선시대 때는 융성했던 유교와 양반의 본고장. 유교하면 제사라는 의식이 늘 커다란 의미를 차지하고 있고, 오죽하며 안동의 유명한 음식의 하나로 헛제사밥이라는 것이 생겨났을까. 지금은 유교나 양반 이런 것들은 여자들이 제사와 군대얘기 만큼이나 거리를 두고 싶은 남자들의 고리타분한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렸다.

도산서원을 구경하느라 점심때를 놓치고 찾아간 식당. 이미 헛제사밥은 재료가 떨어졌고 우린 헛탕을 치게 된 셈이었다. 푸성귀가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라 겨울에는 힘들고 여름에는 쉬 상하기에 오전에 쓸 분량만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힘든 제사밥을 메뉴로 까지 만들어서 고생을 하는지 유교의 고장다운 꼬장꼬장함이라고 해야할까. 이런 전통의 맛을 절실히 원한다면 안동을 권하고 싶다.

보너스 1 : 도산서원 배치도




보너스 2 : 퇴계 이황의 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