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는 무엇을 읽어라, 어떤 순서로 읽어라 말하지 않고, 또 사람들의 독서에 점수를 매기지 않습니다. 사서들은 그들의 고객을 신뢰하는 듯 보입니다. 사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질문을 하도록 허용하고 사람들이 필요로 할 때 도와주지, 도서관이 필요하다고 결정한 때에 도와주지 않습니다. 만일 한 장소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싶으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은 일정한 간격으로 종을 울려서 책읽기를 중단하라고 다그치지 않습니다. 도서관은 또 사람들의 집을 기웃거리고 들여다보지도 않습니다. 도서관 밖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라고 권하거나 명령하지도 않죠. 도서관에는 성적평가제도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뒤섞여 있는 판에 각 개인의 성공과 실패의 내용을 담고 있는 자료가 있을 리 없습니다. 누구나 원하는 책이 있으면 볼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좀더 능력이 나은 독자가 잠시 뒤에 와서 그 책을 볼 수 없게 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도서관은 우리들 가운데 누가 더 그 책을 읽을 자격이 있는지 결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도서관은 특혜를 베풀지 않습니다. 도서관은 사회계층이나 재능이 있고 없음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도서관이야말로 미국 역사의 이상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으며 그에 견주면 학교는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도서관은 학교처럼 공공연히 창피를 주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좋은 독자와 나쁜 독자를 가르고 등급 매겨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써 붙이지도 않습니다. 아마도 도서관은 훌륭한 독서는 그 자체로 보상이 되는 것이니까 상까지 덧붙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훌륭한 독자를 나쁜 독자를 위한 도덕적 자극제로 쓰고 싶은 유혹을 물리친 것 같습니다. 적어도 뉴욕 시에서 도서관과 학교의 가장 주목할 만한 차이점은 도서관에서는 나쁜 행동을 하거나 총을 휘두르는 아이를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나쁜 아이들도 얼마든지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는데 말입니다. 나쁜 아이들도 도서관을 존중하는 것 같습니다. 이 흥미로운 현상은 도서관이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보여 주는 존경심에 대한 무의식에 따른 반응일지 모릅니다. 책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때때로 도서관을 좋아합니다. 사실 도서관은 그토록 멋진 곳이기 때문에 저는 왜 우리가 그것을 강제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도서관은 저의 독서습관으로 미루어 저의 장래를 예견하지 않고, 제가 대중소설을 읽지 않고 고전을 읽으면 더 행복해질 거라고 암시하지도 않습니다. 자유로운 사람들은 흔히 몹시 괴팍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도서관은 괴팍한 독서 습관을 너그럽게 봐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서관은 학교용 교과서가 아니라 진짜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책들은 교과서 같이 여러 사람의 공저가 아니며 정치적인 권위를 가진 선정위원회가 뽑은 것들도 아닙니다. 진짜 책들은 저자 개인의 커리큘럼에 따른 것이지, 독일의 어떤 집단이 짜놓은 보이지 않는 교과과정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아동문고들은 예외지만, 지각이 있는 아이들은 그런 것을 읽지 않으므로 아동문고의 피해는 적습니다. 진짜 책들은 집단화에 몹시 반발합니다. 진짜 책을 읽는 건 군중행동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책이야 말로 독자를 다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절대 고독의 동굴 깊숙이 데리고 가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책은 어떤 두 사람도 똑같이 읽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책은 통제할 수 없는 정신적 성장을 일으키기 때문에-그리고 그것은 감시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전체주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책을 혐오합니다. 텔레비전은 집단적인 매체이고 그런 점에서 교과서보다 훨씬 우월하기 때문에 교실 속에 들어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슬라이드, 테이프, 집단게임 따위가 대중적 학교교육의 중심목표인 집단화의 필요를 충족시킵니다. 이것이 학교들이 그토록 잘하는 그 유명한 ‘사회화’입니다. 학교용 교과서는 명령에 따르면 훈련, 공공의 신화, 끝없는 감시, 전 세계의 서열화, 그리고 끊임없는 위협이라는 학교의 판에 박은 일상생활을 강화하는, 종이로 만들어진 도구입니다. 그것이 각 장의 끝에 있는 질문들이 하도록 의도된 일, 곧 여러분이 예속되어 있는 현실 속으로 다시 데려오는 일입니다. 아무도, 교사들조차도 당신이 그런 질문에 대답할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 질문들은 그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해를 끼칩니다. 그것은 천재적인 수법입니다. 교과서는 군중통제의 수단입니다. 아주 순진한 사람과 학교교육을 잘 받은 사람만이 좋은 교과서와 나쁜 교과서의 차이를 알아보지만 실은 어느 쪽이나 하는 일은 똑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과서는 텔레비전의 프로그램 구성과 매우 비슷합니다. 마취제 같은 텔레비전의 기능, 그 자체야 말로 좋은 프로그램과 나쁜 프로그램 사이의 하찮은 차이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것입니다. 진정한 책은 교육을 하지만 교과서는 훈련을 시킵니다. 따라서 도서관과 도서관의 운영방법은 학교교육의 개혁을 위한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교육에서 자유로운 의지와 고독을 빼 버리면 그것은 훈련이 되고 맙니다. 교육과 훈련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